제주올레트레일
(사)제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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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코스 : 제주원도심 - 조천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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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길이 : 19.7Km  소요시간 : 6-7시간   난이도 :

도시를 떠나기 위해 도시에 선다.‘제주시 원도심-조천’ 올레는 제주시의 도심 한복판, 간세라운지 에서부터 시작된다. 동문로터리 산지천 마당,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산지천을 따라 걸음을 뗀다. 길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산책로로 이어지지만, 그 아래 살아 있는 산지천에는 물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기도 한다. 제주항을 지나서는 바다로부터 방향을 틀어 언덕을 오른다. 제주 시내권에 박힌 보석같은 두 오름, 사라봉과 별도봉이 발걸음을 이끈다. 사라봉은 오르기 어렵지 않은 높이의 오름이지만 제주 시내와 바다, 한라산을 바라보는 전망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사라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오름의 옆 모습, 억새와 바다가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낸다. 그 절경을 따라 가노라면 돌담들만 남아 있는 텅 빈 땅이 나타난다. 4.3 당시 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진 곤을동 마을 터다. 흔적만 남은 집터들을 보며,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 하루 아침에 가족과 이웃 대부분이 죽고 집마저 불타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사람들, 제주의 아픈 상처를 생각한다. 잠시 무거워진 발걸음은 포구와 해변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에서 씻어내고, 다시 시골의 정취가 묻어나는 원당봉 둘레, 오랜 세월에도 여전히 우뚝 서 있는 옛 원당사의 오층석탑, 신촌으로 제사 먹으러 가던 옛길을 따라 여정을 이어간다. 그리고 다시, 바다. 시비코지에서 닭모루로 이어지는 바당길은 숨이 탁 트이는 풍경, 그러나 숨이 멎을 만큼 장대한 풍광 안에 나를 세운다. 제주의 자연이 주는, 제주올레 18코스가 주는 가슴 뭉클한 선물이다. 이 풍광을 만나기 위하여, 이 장대한 자연의 그림 속에 나를 한 점 찍어 넣기 위하여 도시로부터 출발하여 이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닌가. 그 풍광 속에 나를 충분히 놓아둔 후에야 아름다운 신촌의 포구와 대섬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난다. 연북정을 지나 조천 만세동산에 이르러 가슴 벅찬 여정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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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Tip

중간지점인 삼양검은모래해변 근처에 식당들이 있다. 이르게 출발했다면 닭머르, 신촌포구 근처 식당에서 먹어도 좋다.

올레지기


제주올레 길이 처음이라도 문제없습니다.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은 내려놓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레임만 가지고 오세요.
  • 김애숙

공식안내소

제주올레 공식 안내소에는 제주올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척척박사 선생님들께 제주올레의 탄생과 역사에 관해 설명도 듣고, 제주올레가 제공하는 올레길의 다양한 자료도 받아 가세요.

제주올레 공식 안내소 (간세라운지 x 관덕정분식)

위치 : 제주시 관덕로8길 7-9
운영시간 : 08:00~17:00

10:00-17:00 (명절 당일 휴무)

교통정보

2017년 8월, 제주도 대중교통 체계 전면 개편 후, 지속적으로 노선 변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길 아래 내용이 최신 정보가 아닐 수 있는 점 양해 부탁 드리며 버스 탑승 전 최신 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미지 클릭시 해당 페이지/앱으로 이동

문의 및 대중교통 노선 안내

제주올레 콜센터(064-762-2190) 및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콜택시

조천함덕호출택시 064-783-8288 / 조천만세호출택시 064-784-7477

동문시장

해방 이후 제주 상업의 근거지를 이루었던 상설시장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문시장, 민속오일장과 함께 제주시를 대표하는 3대 전통재래시장 중 하나이며, 제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으로 꼽힌다. (자료 제공: 제주국립박물관)

오현단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여 이 지방 발전에 공헌한 김정, 송인수, 김상헌, 정온, 송시열 등 다섯 분을 배향했던 옛 터이다.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제1호.

곤을동

4.3 당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진 마을로, 집터만 남아 당시의 아픈 상처를 말해준다. 곤을동은 항상 물이 고요있는 땅이라는 뜻으로, 고려 충렬왕26년(1300)에 별도현에 속한 기록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었다. 별도봉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안곤을’에는22가구, 화북천 두 지류의 가운데 있던‘가운뎃곤을’에는17가구, ‘밧곤을’에는28가구가 있었다. 곤을동이 불에 탄 것은1949년1월4일과5일. 국방경비대 제2연대1개 소대가 이틀에 걸쳐 곤을동 주민24명을 학살하고 마을을 모두 불태웠다.

김만덕 객주터

건입포는 육지를 오가는 관문으로 교역과 어로활동의 중심지였다. 특히 건입포 주민들은 돛대2개로 운항하는20여 척의 중선으로 봄이면 전북 군산, 연평도, 해주, 신의주까지 진출한 뒤 음력10월에 쌀과 각종 상품을 싣고 귀향했다. 건입포에 거상 김만덕의 객주가 있었다.

닭머르(닭모루)

바닷가로 툭 튀어나온 바위 모습이 닭이 흙을 걷어내고 들어 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닭이 흙을 파헤치고 그 안에 들어앉은 모습을 닮았다 하여 닭의 머리라는 뜻의 ‘닭머르’라고 부른다.

대섬

조천마을과 신촌마을의 경계에 위치한 섬. 점성이 낮아 넓은 지역으로 퍼지면서 흘러내린 용암류(파호이호이용암류)가 표면만 살짝 굳어져 평평하게(투물러스) 만들어진 지형이 특징이다. 제주도 내에서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형이다.

별도(화북)연대

연대는 봉수와 함께 통신을 담당했던 옛 군사시설이다. 봉수는 산 정상에, 연대는 구릉지대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나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는 바다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곳에 세워졌다. 제주의9개 방어진 가운데 하나인 화북진에 속한 별도연대. 제주의 전형적인 연대 모양과 다르게 독특한 방호벽을 두르고 있다. 제주의 주요 관문인 화북포구가 가까이 있어 예부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며, 지금도 연대에 오르면 화북마을 앞바다가 넓게 펼쳐진다. 2001년2월에 복원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9호.

사라봉 (사라오름)

제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오름으로,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예부터 ‘사봉낙조’라고 하여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혔다. 사라봉 해송숲은 2010년‘제1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시민의 숲] 부문에서 아름다운 어울림상 수상.

신촌 가는 옛길

삼양 사람들이 신촌 마을 잔치와 제사 밥을 먹기 위해 오갔던 길이다. 제주올레에서 주민들에게 물어 일부 길을 찾아내 다시 이었다.

연북정

유배되어 온 사람들이 제주의 관문인 이 곳에서 한양으로부터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녘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낸다 하여 붙인 이름. 기록에 의하면 1590년(선조23) 당시의 조천관을 중창하여 쌍벽정이라 칭하였다가 1599년(선조32)에 다시 건물을 고쳐서 연북정이라 개칭하였다. 건물은 네모꼴에 가깝고 높이14자의 축대 위에 동남쪽을 향해 세워져 있다. 축대의 북쪽으로는 타원형의 성곽이 둘러 쌓여 있다. 이 곳의 모양의 크기가 옹성과 비슷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연북정은 망루의 용도로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제2호.

원당사지(불탑사) 오층석탑

원제국시대 제주도의3대 사찰의 하나였던 원당사의 터. 원당사는13세기 말엽 창건된 것으로 보이며 원나라 기황후가 삼첨칠봉의 명당 자리에 절을 지어 불공을 드리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17세기 중엽까지 존속되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1914년 그 터에 불탑사가 재건되었다. 불탑사 경내에는 원당사의 오층석탑이 보물 제1187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26년에 원나라의 황실에 공녀로 끌려가 황후가 된 기 씨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한다.

제주민속박물관

제주민속유물의 수집과 보존에 한 평생을 바쳐온 민속학자 진성기 씨가 설립한 박물 관. 1964년 개관해 197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제주 선인들의 지혜가 깃든 3,000여 점의 다양 한 민속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야외에는 초가와 ‘제주무신궁’이라 이름 붙인 143기의 무신상이 세 워져 있다. 가끔 마을 사람들이 초가에 찾아와 실제 굿을 하기도 한다.

조천 만세동산

1919년 3월 21일, 신천, 조천, 함덕에서 온 사람들이 미밋동산(만세동산)에 모였다. 서울 휘문고등학 교에 다니다 3.1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고향에 돌아온 고등학생 김장환이 동지들과 함께 만세운동 을 준비했던 것이다. 미밋동산에 태극기를 꽂고 김시범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며 조천 비석거리까지 행진하였다. 주동자들은 모두 연행되었다. 이튿날 조 천장터에서 연행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다시 만세운동이 벌어졌고,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연행 되었다. 그 뒤로 미밋동산은 만세동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조천만세동산에는 항일운동기념관과 애국선열추모탑, 독립유공자비 등이 세워져 있다.

환해장성

제주도 해안선300여 리에 쌓은 석성. 고려 원종11년(1270) 삼별초군이 제주로 들어가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처음 쌓았으며, 왜구 침입이 심했던 고려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보수와 정비가 이루어졌다. 현재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는10개소(제주시 화북, 삼양, 애월, 복촌, 행원, 한동, 서귀포의 온평, 신산)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김상헌의 <남사록>에서는 ’탐라의 만리장성’이라 불렀다.

애기업은돌

별도봉의 능선을 따라서 목재울타리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면 기암괴석이 하나 나타 난다. 그 모양이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업은 모양 같다고 하여 ‘애기업은돌’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않자 애기를 업고 이곳에서 기다리다 돌(망부석) 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고씨 주택 (高氏 住宅)

고씨 주택은 고용준이 지은 근대 건축물로, 일제 강점기에 개설된 북신작로 남쪽(산지천 서쪽)에 있다. 올래*에 접한 문간거리**와 바깥채(밖거리)를 안쪽의 안채(안거리)와 따로 지어 마주 보게 놓았고, 그 사이에 마당을 만들었다.